어느새 내가 이런 글을 쓸 나이가 다 되었나 싶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긴 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요즘 40대라고 하면 아직 한창일 나이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에 절망하고 있을 20대 청춘들을 위하여 조그만 위로의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았다. 누가 그러던데 요즘 출판 시장은 힐링이 대세라고 한다. 정말로 힐링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문득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나이가 20대 보다는 50대와 가깝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누군가를 향해 도전해야 할 나이가 아니라 젊은 청춘들의 도전을 받을 준비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기성세대에 진입하고 있는 나이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50대보다는 20대를 향하고 있다. 단지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자기 위로의 의미로서 하는 말이 아니다.
50대와 진행한 세대 논쟁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종교와 정치, 섹스 이렇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나는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세대 논쟁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문화 변동의 과정을 거친 우리나라에서 세대 이야기는 잘못 건드리면 급속히 폭발할 수 있는 소재이다. 그런데 이를 망각하고 얼마 전에 50대 선생님들과 세대 논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세대인 40대와 그 위 세대와의 갈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요즘 젊은 세대인 20대와 40대 이상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내가 속한 세대를 옹호하는 이야기도 아니어서 긴장을 좀 놓았는데 나의 신중하지 못한 성격이 나은 불찰이었다.
내가 말하는 요지는 이것이었다.
'우리 40대 이상의 선생님들이 요즘 세상 좋아져서 젊은애들 살기 좋아졌다는 할아버지 같으신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실 우리보다 위 세대의 어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세대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하신 것은 알지만, 그래도 많은 부를 일굴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내일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내일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시간이고, 내일의 삶 자체가 암담한 세대이다. 나는 50대 어르신들보다는 20대 청춘들이 더 불쌍하다.'물론 베이비붐 세대의 어려움도 알고 구조조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 세대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계신 분들은 그래도 다른 세대의 어려움을 돌볼 여유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세대 논쟁을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실 고통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보다 크다 해서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고통의 크기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 패배의 뒤안길에서 진보 진영에 한 표를 던지고 절망에 빠져 있을 20대 젊은 청춘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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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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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기간에 부재자 투표소에 길게 늘어선 20대 청춘들의 행렬을 찍은 <오마이뉴스>보도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절실하였으면 저 젊은 나이에 투표하겠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해도 용서가 될 나이에 투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지금 사는 세상이 팍팍하면 저 긴 줄을 서고 있을까 싶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고 '컵밥'(컵밥은 서울 노량진 노점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이다. 일회용 용기(컵)에 볶음밥 등을 담아 2500원에 판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인기메뉴)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젊은 청춘들의 힘든 한끼를 나타내는 이 말을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992년의 기억, 2012년과 비슷했다 특히 20대 진보적인 청년들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특별한 승리의 기억을 변변하게 안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라면 대부분 철이 들고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한 번도 진보적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한 세대이다. 한마디로 승리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20대 초반도 그랬다. 87학번 선배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선배들은 한 때나마 승리의 기억이라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6월항쟁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내 나이 23살에 치러진 1992년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2012년 대통령 선거와 닮은 꼴이다. 진보 세력이 서울과 호남에서밖에 못 이긴 것도 그렇고, 진보 세력의 후보가 명실상부하게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선 것도 그랬다. 야권이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선거에 패배한 것도, 5년 전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대선에 패배한 것도 비슷했다. 선거 패배 후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도 지금과 비슷했다.
난 1992년 추운 겨울에 자원봉사를 하며 김대중 후보의 선거 운동원으로 열심히 뛰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꼭 이길 것 같은 생각이 이번 선거처럼 들었다. 나도 승리의 기억을 만들리라 하고 열심히 뛰었지만 200만표 차이가 나는 대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마음이 무척 슬펐다. 아래의 그림은 당시 <한겨레> 그림판에 실린 박재동 화백의 만평이다. 힐링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구나 하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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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2월 22일자 한겨레 그림판, 당시 대선 패배 후의 허망한 마음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
ⓒ 박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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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는 시민들 하나씩 안아주는 표창원 교수의 사진을 보고 이 그림이 떠올랐다. 아, 지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야 할 시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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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가 필요해... '제18대 대선 투표율 80%를 넘기면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약속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투표율이 75.8%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프리허그 도중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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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선 패배의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갔다. 1994년에는 최영미 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간돼 시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5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했으면,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오늘 아침 이 시를 패러디한 글로 카톡의 프로필란을 바꿨다.
"잔치는 끝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을 치우고 새로운 잔치를 준비해야 한다."나의 카톡을 보고 제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절망스러워서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는데 어떻게 하죠?"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극히 선생스런 대답밖에 없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게 인생이야 ~~ "답이 너무 미진한 것 같아서 그리고 40대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20대에도 그런 절망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절망 뒤에서 1997년의 DJ 당선을 보았고, 2002년의 노무현 당선을 볼 수 있었다고 말이다.
20대 청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우리가 못나서 너희들에게 조그만 승리도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구나. 우리가 좀 더 잘했으면 너희들을 그렇게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텐데.그래도 절망 속에 희망은 피어나더라. 무책임한 말 같지만 정말로 그럴 거야. 정말로 필요로 하면 어디선가 분명히 꽃은 피어나고 있을 거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쓰다가 1992년의 절망감에 사로 잡혀 있던 내가 나타나서 한참을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절망에 빠져 있을 20대를 안아주고 같이 한번 울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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